1980년 廣申 72세

수유동 399의 9번지에 거주하며 (字宙와神藥) 저술하여 출간. 1981년 辛酉 73세 (宇宙와 神藥)의 한글화를 시도한 (救世神方)을 출간. 12월 31일 경남 함양읍 하동586-3번지로 가족을 데리고 낙향.

1983년 癸亥 75세

주거지를 하등에서 상동(운림리) 154의3 번지로 옮김 (45년 광복 이후 78회째)

1986년 丙寅 78세

암 난치병과 각종 괴질에 대한 일생의 경험 醫方을 모아 (神藥) 출간. 6월 20일 한국일보 12층 대강당서 (神藥) 출간 기념강연회 갖고 '神蒸의 實相과 그 활용방법'이라는 연제로 강연하였다.


1987년 丁卯 79세

이준승, 조백간, 남기민 등의 발기로 서울프레스센타 19층에서 2백여 명의 발기인이 동참한 가운데 민속 神藥연구회가 창립되고 김옹을 終身회장으로 추대하였다. 이 모임은90년 3월 '건강문제연구시민모임'이라는 이름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1989년 己巳 81세

김옹의 仁術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바램에 따라 월간 (民醫藥) 89년 7월호로 창간돼 김옹을 회장으로 추대

1990년 庚午 82세

월간 (民醫藥)의 제호를 4·5월호부터 (건강저널)로 변경하여 발행. 이 잡지는 김옹의 특이한 醫方을 연구 실천 보급하는 한편 東西醫學의 상호 수용을 통한 발전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4월에 상동(을림리) 154의 3번지 自宅을 처분하고 함양읍 竹林里 山194의 3번지에 낡은 집을 허물고 26평 규모로 조립식 판넬 주택을 지어 입주하였다. (79회 ) 그러나 이집이 무허가 주택이라는 이유로 철거됨으로써(자진철거) 다시 竹林里 1048-2 인산죽염 제조장 부지내로 옮겨 지은 조립식 주택으로 주거지를 옮겼다. 이로써 김옹은 1945년 광복이후 모두 80회의 이사기록을 갖게 되었다.

1992년 壬申 84세

84세 때인 1992년 임신년 음력 3월 3일, 가족들을 모이게 한 뒤 '세상에 남기고 가는 말'을 녹음토록 한다. " 인업을 중시함이 부국의 지름길 " 이라는 요지의 이 말씀은 유언이 되었으며, 그 녹음한 전문이 시사춘추 92년 4월호에 수록되었다. 마지막 가는 순간까지 자신을 돌보지 않고 오로지 가난하고 병든 이들에 대한 사랑과 나라에 대한 충정, 세상 사람들에 대한 효의 가르침에 관심을 가질 뿐이었다. 선생은, 1989년부터 1992년초까지 삼남댁인 신약당에서 거처하시다가 1992년 5월 19일(음력 4월 17일) 오후 11시 25분 경남 함양군 함양읍 교산리 함양아파트 차남 윤세 씨 집에서 파란만장했던 생애를 마감하고 선계로 떠났다. 선생이 가신 뒤 생전에 환자들을 맞아주던 이곳 삼봉산 인산농장 산등성이에 법구를 안장하였으며, 7월 6일 지리산 실상사에서 봉행된 사십구제때는 평소 자신의 사후에 나오리라고 예언하였던 '神藥本草'를 영전에 바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