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 인산선생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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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ㅇ 녹취 및 수초원고


라의 운명이 기울어 일제(日帝)에 병탄되기 직전인 1909년에 태어나 16세 때부터 광복운동에 가담, 일본 경찰의 추격을 피해 다니며 그 와중에서도 가는 곳마다, 만나는 병자(病者)마다, 죽음에서, 혹은 병고(病苦)에서 구원하였던 전설적인 명의(名醫)이다. 팔십 평생을 불우하게 살아온 인산(仁山) 김일훈 옹의 불운(不運)은 곧 이 땅, 이 민족의 불운이다. 일제에 의해 억압당해 온 민족이, 다시 세계 강대국들의 힘에 짓눌려 기를 펴지 못하고 사는 아픔을 김 옹은 몸소 민족과 함께 나누며 살아왔다. 5천 년 한의학(韓醫學)의 지혜를 대변하는 그의 독특한 의료술은 아직도 초야(草野)에 깊이 파묻혀 있다.

가 민족을 위해 전개한 독립운동은 차지하고라도 죽음의 위기에서 수 천, 수 만의 목숨을 구한 그의 공로를 아무도 주목하려 들지 않는다. 지상(地上)과 수중(水中)에 널려 있는 숱한 약의 재발견, 재천명에도 관심이 없을 뿐 아니라 공간 색소 중(色素中)에 분포되어 있는 무궁한 약분자(藥分子)들을 합성, 각종 암(癌)과 원자병(原子病)·공해독·난치괴질 등에 두루 활용하는 방법을 소리높이 외쳐도 아무도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려고 하지 않는다. 최근에 와서야 그에게서 난치병을 고친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그의 독특한 의료술은 서민 대중(大衆)들에게 차츰 전파되어가고 있다. 특히 수많은 종교 성직자들은 그의 의료술에 더 없는 찬사를 보내며 활용방법을 모색하고 있으며 대구·부산·마산 등 일부 지역의 의사·약사들도 김 옹의 의료술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도 한의학(韓醫學)을, 뒤떨어진 의학쯤으로 치부해 버리는 이 땅의 보건당국자들과 많은 의사들은 김 옹의 의료술에 대해 회의적이거나 거부반응을 보일 뿐이다. 곁에 훌륭한 약들을 쌓아둔 채 진정한 의료술을 몰라 헤메다가 '무고하게' 죽어가는 사람들이 더 이상 없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과 권력과 권모술수가 횡행하는 오늘의 사회에서 그가 차지하는 위상(位相)은 가장 소득이 낮은 최하층 그룹에 속할 것이다. 자연히 그를 찾는 수많은 방문객들도 가난하고 병든 소외된 계층 사람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게 된다.그는 병든 서민(庶民)들의 진정한 임금이다. 서민들의 한량없는 온갖 질병을 다스리는 의황(醫皇)으로서 칭송받고 있다. 이 병원, 저 병원, 먼 외국의 병원까지 각지의 병원들을 편력하던 병든 사람들의 종착역. 삶과 죽음의 마지막 기로(岐路)에서 안타까이 갈구하는 한 가닥 생명선에 희망과 활기(活氣)를 부여하는 만병(萬病)의 통치자(統治者).천하의 생령(生靈)들을 병고(病苦)에서 구제하면서도 세금을 걷지 않는 자비로운 임금. 그러나 부귀(富貴)한 사람들은 대부분 그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지 조차 모른다.병들고 가난한 사람들 이외에는 아무도 우러르지 않고 가까이 하지 않는 고독한 황제.과연 그는 자신의 말처럼 무변허공(無邊虛空)보다 더 광대한 몸으로 손바닥만한 땅에서 유형(流刑)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상공(上空)에는 산삼분자(山蔘分子)를 위시하여 각종 약분자(藥分子)가 가득하고 산야(山野)에는 뛰어난 약성(藥性)을 지닌 동·식물이 자라며 주위 바닷물속에는 무궁한 약물질(藥物質)을 간직한 곳. 이 한반도 땅에서 그는 지구촌의 질병 퇴치와 영원한 미래세 인류의 무병건강(無病健康)을 위하여 부단히 약실험을 계속하였다.

김일훈 옹의 저서 《神藥》중에서